
리키 저베이스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애프터 라이프(After Life)』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남자의 삶’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이를 냉소적이고 때로는 거친 유머로 풀어냅니다. 이 드라마는 상실과 우울, 자살 충동이라는 주제를 다루지만 정통 멜로도, 전형적인 감동 서사도 아닙니다. 오히려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의 본질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며, 시청자에게 불편함과 공감을 동시에 안깁니다. 본문에서는 『애프터 라이프』에서 유머가 상처를 어떻게 감싸고, 동시에 드러내는가에 대한 구조적 의미를 분석합니다.
리키 저베이스식 유머의 기능
리키 저베이스는 블랙 코미디의 대가로 평가받는 인물로, 그의 유머는 대부분 불편함, 사회적 금기, 자조적 성향을 기반으로 합니다. 『애프터 라이프』에서 그는 배우이자 작가, 감독, 제작자 역할을 모두 맡으며 자신의 시선으로 상실을 해석합니다.
주인공 토니는 아내를 암으로 잃고, 삶의 의지를 잃은 채 세상과 단절된 상태로 하루하루를 버팁니다. 그런데 그의 삶 속 대사는 놀랄 만큼 냉소적이며, 때로는 극단적인 블랙 유머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쓰레기야”, “어차피 다 죽는데 뭐하러 참고 살아” 같은 대사는 토니의 내면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가 고통을 얼마나 유머라는 방식으로 방어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드라마에서 유머는 단순한 웃음이 아니라 심리적 무장 해제 수단입니다. 웃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프기 때문에 웃습니다. 이 방식은 시청자에게 상처받은 인물의 진심에 도달하도록 도와주는 간접화법으로 기능합니다. 토니가 날카로운 말로 주변 사람들을 공격할수록, 사실은 자신이 더 깊은 고통에 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이 역설적인 방식은 리키 저베이스 특유의 감정 연출이며, 단순한 재미가 아닌 정서적 진실에 접근하는 장치입니다.
유머로 감정을 해소하는 블랙 코미디의 정체성
블랙 코미디는 ‘웃겨야 한다’는 코미디의 전통적 정의를 따르면서도, 고통, 죽음, 부조리 같은 무거운 주제를 비틀어 다루는 장르입니다. 『애프터 라이프』는 이 장르의 정체성을 매우 충실히 구현한 작품입니다. 상실, 자살 충동, 무력감이라는 무거운 감정들이 웃음의 외피를 두르고 등장하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특히 인물 간 대화가 핵심입니다. 토니는 이웃, 동료, 요양원 주민, 배달원 등 주변 인물과 나누는 짧은 대화 속에서, 삶의 허무와 인간의 아이러니를 찌르는 멘트를 날립니다. “내가 죽을까봐 걱정돼? 그게 좋은 거야?”라는 식의 자기 비하성 유머는, 그가 처한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는 방식입니다.
이런 대사는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견딜 수 있게 해주는 방법입니다. 토니가 고통 속에서도 세상과 단절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는, 그 감정을 농담으로라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웃음은 이 드라마에서 감정을 숨기는 장치가 아니라, 감정을 드러내는 도구입니다.
이러한 접근은 감정을 과장하거나 억지로 끌어올리는 일반 드라마와 다릅니다. 오히려 감정을 비틀고, 밀어내고, 뒤늦게 드러냄으로써, 시청자에게 더 큰 여운과 공감을 남깁니다.
유머가 인간다움을 회복시키는 방식
『애프터 라이프』는 상실을 딛고 치유로 나아가는 서사지만, 감동이나 눈물로만 접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이중성과 솔직함을 유머를 통해 보여줍니다. 토니는 처음엔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보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타인의 상처와 삶을 바라보며 점차 변화합니다.
드라마는 삶이 반드시 나아지거나 극적으로 회복된다는 낙관적인 메시지를 강조하지 않습니다. 대신, 작은 대화, 우연한 친절, 불쑥 웃게 되는 상황들 속에서 살아갈 이유가 생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유머는 그 자체로 회복의 도구이며, 다시 인간 관계를 회복하는 매개로 작용합니다.
특히 토니가 자기 중심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기 시작할 때, 유머는 공격이 아니라 연결의 언어로 바뀝니다. 이는 상실과 우울을 감싸는 인간적인 방식이며, 유머라는 수단을 통해 ‘함께 살아간다’는 감정을 되찾는 여정을 상징합니다.
결국 이 드라마는 말합니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지만, 함께 웃을 수 있다면 견디는 것이 가능하다고. 이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삶을 견디는 가장 현실적인 방식으로서 유머가 작용하는 진정한 의미입니다.
『애프터 라이프』는 유머를 ‘도망’이 아닌 ‘정면 대응’의 도구로 사용합니다. 고통을 마주하고도 웃을 수 있는 힘, 혹은 고통을 웃음으로라도 표현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리키 저베이스의 메시지는 단순한 블랙 코미디의 영역을 넘어섭니다. 유머는 여기서 감정 회피의 도구가 아닌, 정서적 진실을 전하는 방식이자 인간성 회복의 통로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애프터 라이프』는 현대인이 처한 상실의 시대에 꼭 필요한 이야기이며, 웃음이라는 날카로운 도구로 상처를 감싸안는, 진짜 ‘사람 냄새 나는’ 드라마로 남습니다.